처음엔 모둠 생선구이집을 가려 했는데, 일요일에 문을 닫는 음식점이 더러 있고 여기가 바로 그랬다. 최근 강원도 춘천에서 닭 소금철판구이를 먹지 못해 아쉬웠던 터라 소금구이 메뉴를 찾던 중 우연히 검색된 '닭익는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외국인 알바생이 안 된다고 하길래 다른 집으로 가야 하나 싶던 순간,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한 마리 되요? 주방에 물어볼게요"라며 사장님 권한으로 먹고 싶던 닭구이를 먹을 수 있게 해주셨다. 머리가 검은 걸 보니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 같았던 알바생은 처음엔 한국말을 어려워하는 듯했지만, 사장님이 오셔서 확인해주셨다.

알바생이 반찬과 생닭고기를 내왔다. 철판이 달궈지는 동안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며 겨자소스 닭 샐러드를 먼저 맛봤다.
새콤달콤한 겨자소스에 닭 샐러드는 입맛을 돋웠다. 철판이 달궈지자 사장님이 직접 닭을 구워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닭 한 마리가 모두 구워지기까지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0년 내공이 빚어낸 맛의 철학
닭 한 마리를 시켰는데 진짜 한 마리인지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닭은 한 마리를 통째로 부위별로 썰어져 나왔다. 닭다리, 닭안심 등 부드러운 부위를 먼저 먹었다. 여기는 주문과 동시에 염지된 닭을 갈라놓는다고 한다.
메인 소스는 BHC의 자부심인 올리브유였다. 올리브유 속에 편마늘과 페퍼론치노가 들어있었다. 마치 닭 감바스를 먹는 맛이었다. 닭을 구울 때는 온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고기가 너무 오래 구우면 질기듯이 적정한 온도에서 알맞게 익혀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마늘과 매운고추맛이 가미된 올리브유에 찍어 먹으니 부드러움이 한층 깊어졌다.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구워주신 닭가슴살은 일품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닭가슴살을 처음 먹어봤다. 닭 굽는 철판 옆에는 데리야키 소스로 버무린 부산 밀면과 콘치즈가 넉넉히 들어있어 곁들여 먹는 재미가 있었다.

홍보보다 맛이 우선인 사장님의 고집
한 할아버지가 밖에 계셨는데 손님맞이를 해서 안으로 들여보내셨는데, 재일교포였다.
닭을 3인분 가까이 드시고 가셨는데, 나중에 비서실에서 전화가 와서 보니 롯데 계열의 회장님이셨다.
그 회장님은 한국에 오면 꼭 닭을 드시고 가셨다. 다시 와서 비서실 사람들과 회사 사람들을 자주 데려왔다.
그때 현찰로 주신 돈봉투가 300만원이었다고 한다.

사장님은 임창정, 이윤서, 축구선수 양민혁도 왔다 갔다고 하신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도 연예인 사진이나 사인 한 장 없었다. 이윤서는 자발적으로 사장님과 사진을 찍으면서 "사장님은 왜 저랑 사진 찍자고 안 하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요즘 하는 방송인 <전현무의 계획2>에서는 노포의 고집있는 사장님들이 생각났다. 방송 녹화와 동시에 현장 장소 섭외를 하는데, 사장님 중에는 방송을 거절하는 분도 계셨다. 방송에 나가려고 돈을 주고 방송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사장님은 그동안 닭맛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홍보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혹자는 방이점 위치 자체가 사람들이 단골로 올 곳이 아니라며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닭이 맛있으면 된다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다녀간 후기를 벽에 쓰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 한번 홍보를 하려고 했더니 네이버 상단 마케팅 등 비용을 알아보니 월 마케팅 비용이 수백만원이란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닭고기는 빠르게 없어져 가고 있었다. 닭익는 마을은 BHC 계열 프랜차이즈의 1호점이라고 한다. 시그니처 메뉴는 닭 한 마리 구이이고, 히든 카드는 닭전이란다. 닭전은 90%가 닭이고 닭도가니와 닭다리 살만으로 만들며, 나머지는 전분가루라고 하셨다. 처음 개발할 때 유명한 요리사 4명을 모셔 시식을 했는데, 처음엔 맛있다고 하더니 팔려고 한다고 했을 때는 말려서 다시 개발하고 시식을 통과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란다.
처음엔 어느 정도만 구워주시고 빠지실 줄 알았는데, 정말 모든 닭 부위를 남김없이 구워서 우리에게 한 점씩 소스까지 발라서 서비스해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프리미엄 서비스 덕에 마지막 한 점까지 적절한 온도에서 맛있게 먹었다. 자신의 음식과 식당, 그리고 운영방식에 나름의 생각과 철학으로 이끌고 가는 사장님이 얼마나 될까. 이 집이 오래도록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하셨으면 좋겠다.
다음에 집이나 캠핑할 때 꼭 염지된 닭을 해부해서 올리브유와 편마늘, 페퍼론치노 소스에 찍어 먹어봐야겠다. 그리고 닭의 절반정도 먹을때쯤 부터는 여유있게 같이 온 짝궁이랑 대화를 나누며 먹고 싶었다. 한번 와봤으니 다음에는 중간부터 직접 굽겠다고 해야지!
내돈내산, 이번에 방문한 곳은 <닭익는 마을 방이점> 입니다.
https://naver.me/FE3wV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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